REPORT_ 지구는, 옷을 먹지 않는다.


REPORT

지구는, 

옷을 먹지 않는다.


                                                                       

“사실 옷은 참 마음 편한 쓰레기다. 폐비닐 대란의 충격에 이어 투명 페트병 분리 수거, 제로웨이스트 운동이 활발한 와중에도 옷이 ‘줄여야 할 것’으로 지목된 적은 없었다. 심지어 대부분의 옷은 플라스틱이다. 한 철 입고 버릴거라 부담없이 산 폴리에스테르 티셔츠는 페트병과 동일한 원료임에도, 버릴 때 마음의 짐이 없다. 수거함에 넣으면 고맙게 입혀질 것이란 믿음과 함께 눈앞에서 사라져주기 때문이다.”

김가람(KBS 시사교양국 PD) 

사진 출처 KBS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옷을 먹는 소, 그렇게 시작된 취재

처음에는 지방 어느 소각장에서 태워질 거라 생각했다. 순전히 호기심에 헌 옷들의 행방을 찾던 중 해외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믿기 힘든 사진 하나를 보게 됐다. 헌 옷이 켜켜이 쌓인 언덕 위에서 소들이 풀 대신 합성 섬유를 먹고 있는모습이었다. 헌 옷들은 계속해서 수레에 실려 오고, 한 켠에선 오래된 옷들이 불 타며 검은 연기를 뿜고 있었다. 사진이 찍힌 곳은 가나의 중고시장. 사진의 주인인 현지 환경단체에 바로 이메일을 보냈고, 줌미팅으로 취재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온 헌 옷도 혹시 본 적이 있나요?”

“네, 매주 봐요. 노란색 포대에 메이드 인 코리아가 적혀 있어서 아주 눈에 띄죠.”


한국은 세계 5위의 헌 옷 수출국이다. 우리가 헌 옷 수거함에 넣는 옷의 약 5%만 국내 빈티지 매장 등에서 유통되고, 나머지는 대부분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된다. 2주마다 새로운 아이템을 출시하는 ‘패스트 패션’을 넘어 빅데이터와 추천 알고리즘이 결합한 ‘울트라 패스트 패션’의 시대가 되면서 옷의 소비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몸은 하나, 옷장의 크기는 그대로인데 사는 속도가 빨라지니 버려지는 속도도 빨라질 수밖에. 우리가 부담 없는 가격에 ‘울트라 패스트 패션’을 즐기는 동안 누군가는 ‘울트라 패스트 웨이스트’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내가 버린 옷, 누군가 고마워하며 받아 입겠지’라는 착각

인구가 3,000만 명인 가나에는 매주 1,500만 개의 헌 옷이 수입된다. 상인들은 무게에 따라 값을 내고 선진국에서 온 헌 옷 포대를 산다. 포대는 속이 보이지 않아 값을 치르기 전엔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가 없다. 상인들에 따르면 수입된 옷들 중 40%는 가나의 중고시장에서도 팔리지 않는다. 더 이상 지구에서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이옷들은 중고시장 근처 오다우 강가의 매립지로 보내진다. 말이 매립지일 뿐, 담장 하나 없는 공터에 쓰레기들을 쓰러지지 않을 높이까지 쌓아 놓은 곳이다. 이곳에 모인 헌 옷들은 바로 옆의 강과 마을도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오다우 강은 더 이상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물이 흘러야 할 곳에는 찌그러진 페트병과 엉킨 옷들이 고여 있다. 쓰레기 더미를 뒤져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옷은 쓸모가 없다.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헌 옷들이 또 다른 헌 옷에 깔리고 뒤엉켜 축 늘어진 ‘옷의 무덤’은 패션의 속도에 질식해 버린 행성의 축소판 같았다. 흙이 아닌 섬유 위를 거닐며 먹이를 찾는 소들의 모습에 ‘거기서 왜 그러고 있어? 그거 먹으면 안돼’라는 생각에 눈물이 차 올랐다. 우리가 한 철 입고 버린 옷이 가나에서 썩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수 백년. 세계 패스트 패션의 쓰레기 장이라 불리는 이곳에선 유행의 주기가 빨라질수록 쓰레기가 쌓이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매일 수 없이 밀려드는 헌 옷들이 처리되는 마법은 없다. 매립지가 꽉 차면 먼저 온 헌 옷들은 불태워지고 석양을 가릴만큼 두터운 연기가 하늘을 뒤덮는다. 누군가 고맙게 입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옷은 안일한 바람과는 다른 곳에서 죽음을 맞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엄청난 환경오염은 우리의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가 버린 옷이 멀리 보내졌듯, 우리가 산 옷은 대개 먼 곳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값싼 옷을 사는 즐거움 뒤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환경적 대가가 뒤따른다. 

최저가에 부릴 수 있는 노동, 최저가에 오염시킬 수 있는 강과 바다 없이 9,900원 짜리 티셔츠는 만들어질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지구가 아닌 ‘당신’을위한각성

지난 여름,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가 방송되고 예상치 못한 큰 관심을 받았다.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신 것에 기뻤고, 변화와 실천의 방향을 고민해 나가는 분들을 보며 벅찬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편 ‘이게 내가 옷을 사지 않는다고 해결될 일인가?’, ‘값싼 옷이라도 사는 즐거움에 괜한 죄책감을 주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패션업계와 재활용 업계를 넘나들며 인터뷰를 하던 5월에도 마찬가지였다. 오롯이 ‘옷’에 관해 1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만든다니 반가워하시는 분들이 많았지만 뾰족한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인만큼 우려의 시선도 있었다. 그럼에도 프로그램을 완성할 수 있었던건 깜깜한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빛이 새어들어오는 문틈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과잉생산과 책임없는 폐기라는 문제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프로그램은 첫 번째 목표를 이뤘다. 나아가 옷을 사랑하고 패션에 진심인 분들이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멋진 변화를 일으키는데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보다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 

답이 아닌걸 알면서도 너도나도 다 하는 에코퍼, 비건 가죽, 페트병 티셔츠가 아닌, 직업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패션계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구입할 자유가 있는 소비자이기에 앞서 생각할 자유가 있는 지구의 일원으로서 그 고민을 함께 할수 있는 최애 브랜드를 만날 수 있길 고대한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라벨이 필요한 일회용이 아니니까, 우리의 옷을 삼켜줄 또 하나의 지구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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