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_ 멋있는 농부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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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는 농부의 시대


                                                                       

안녕하세요.
지속가능 윤리적 패션허브(SEFH) 의 이미영 대표입니다.

저는 커피를 좋아합니다. 집에서 사용하는 원두 보관통을 들고 집을 나설 때가 있어요. 동네 '용기커피보급소'에 가면 공동구매한 공정무역 원두를 원하는 만큼, 들고 온 용기에 담아 올 수 있는데, 100g, 200g 양껏 구입한 원두를 통에 담아 들고 가끔 이웃을 만나 커피 한 잔에 담소도 나눕니다. 

후배 소개로 알게 된 마르쉐 장터에 먹거리를 사러 갈 때도 있어요. 장바구니에 제철 채소와 과일을 채우고 나면 그제서야 흙, 밭 냄새 가득한 장터를 휘휘 둘러보게 되지요. 수확한 농작물을 판매하는 농부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농부들은 참 멋있다'. 우린 멋을 아는 민족입니다. 그걸 꽤나 오랜 시간, 잊고 있었어요.


패션은 ‘멋’을 생산하는 산업입니다. 옷감을 감별하고 재단에 공을 들이는, 전문가들의 노고로 타인이 입고 추구하는 멋을 맞닿게 하는 산업입니다. 설사 이 즐거움이 자본의 지배적인 프레임에 갇혀 있다 해도 멋을 부인한 패션은 감동과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하지요.

                                                                      

그러나 그 멋을 온전히 즐기며 살아 온 우리는 패션 산업으로 희생되고 있는 환경과 인권문제에 조금씩 각성과 실천이라는 움직임을 서로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처럼 멋을 향유하기에 앞으로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야 하니까요. 디딜 땅과 가족의 건강이, 동물의 터전과 우리네 안전이 불안합니다. 전세계적으로 환경을 살리자는 각성의 목소리가 시작된 수십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의식은 전환 되었지만 실천이 많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신축년의 시작을 알린건 펜데믹에 관련한 뉴스였는데, 사실 저도 걱정이 앞섰습니다. 지속가능 윤리적 패션허브의 운영을 맡은 2019년만 해도 글로벌 서밋을 비롯해 세계적인 캠페인과 협업을 이루었고, 무엇보다 윤리적 패션허브의 입점브랜드가 눈에 띄는 성장을 하던 찰나였으니까요. 

사무국이 해야 할 일과 조준점이 선명해지고 더 많은 외부와 교류를 이루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빴던 그때, 두 발이 묶여버린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물어 가는 2021년을 되돌아보면, 예상외로 견고한 성과를 도출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5년간 협력사를 찾아 발굴하는 사업이 사무국측에서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이었다면, 이제 협력사들이 먼저 사무국을 찾는 일이 많아졌어요. 지난 한 해 지속가능한 패션에 보여 준 각계각층의 관심 폭도 예년보다 훨씬 높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MZ 세대가 의식있는 소비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과 그들만의 문화도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윤리적인 패션을 사고 입는 문화에는 아직도 많은 어젠다가 출현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옷이라는 게 가능하긴 한 거야?’, ‘옷을 어떻게 안 버리고 살 수가 있어?’, ‘설마 내가 옷 하나 버린다고 당장 큰일이 나겠어’. 

맞습니다. 우린 아직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하기에 서툴고 모호한 경계를 많이 남겨 놓았고, 옷과 환경에 대한 이슈를 이야기하는 것에 적극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움찔거리는 변화들을 넌지시 들여다 보면, 협력과 협업을 위한 소통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나쁜 대화는 없으니까요.

                       

앞으로 지속가능 윤리적 패션허브 (SEFH)는 현재 편중된 네트워크의 저변 확대와 더불어 생산 인프라 구축에 좀 더 힘을 써보고자 합니다. 개별 브랜드가 결코 홀로 해결할 수 없는 공동의 과제와 주제를 수면 위에 올려놓고,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해 보려 합니다. 누군가의 희생 없이 공정한 패션 산업으로 나아가 는길. 아마멋있는 농부처럼 묵묵히 걸어가면 되지 않을까요.

                       

크고 작은 습관을 바꿔가며 지금 이 시간에도 저변이 확대되고 있는 윤리적 패션. 지구를 살리는 일이라지만, 결국 우리를 위한 일이지요. 

이번 <2021-2022 아카이빙 북>을 통해 이 변화를 알아볼 수 있길 바랍니다. 


다가오는 2022년 임인년에도 

평온한 지구를 염원하고 이루는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속가능 윤리적 패션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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